따라서 올리는 늦은 2020수능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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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능 전날
어딘지 모르게 학교 전체가 들떠 있는 날이었다. 사실 수능 때문에 긴장하던 것은 50일 정도 전. 그사이 친구들은 놀든지 공부하든지 해서 이미 지친 상태였다. 공부하는 친구들은 더 이상 공부 못할 것 같아서 지쳐 있었고, 놀던 친구들은 수능 때문에 눈치 보면서 노는 것에 지쳐 있었다. 맞다. 일반고다. 하지만 수시러들도 많으니 무시하지 마라.
아침에 학교에 가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수험표를 받았다. 담임선생님이 수험표를 나눠주시기 시작하고, 앞 번호부터 나와 차례로 수험표를 받았다. 내 앞 번호의 친구들 중 우리 시 최고의 오지에 처박힌 고등학교가 걸린 친구들이 몇 있었다. 한두명이 나왔을 때는 웃었다. 그러다 내 앞 남자들이 거의 대부분 거기에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싸늘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짓말같이 나도 거기였다. (ㅅㅂ)
수험표를 받고 내려오면서, 전교생은 내일 볼 수능을 걱정하기보단 내일이면 끝난다는 사실에 좋아하는 분위기였고, 그 분위기 속에서 다들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그래선지 장도식을 기다리기 위해 3학년 학생 전체가 계단을 빽빽이 채우고 기다릴 때, 다같이 노래를 불렀다. 사실 우리 학교가 이런 분위기다.(다들 착해) (근데 나중에 안 거지만 위쪽 계단에 서있던 애들은 욕했다고 한다. 뭘 노래를 처 부르고 있나 빨리 안 내려가고..이러면서. 꼬였어 ㅅㅂ) 장도식을 해 본 경험이 있는가. 현역이라면 아직 못했을 것이고, n수 분들이라면 했을 것이다. 내 선배들이 그걸 할 때도 그냥 옆에 짜져서 구경이나 하던 내 입장에선 잘 몰랐지만, 굉장히 쪽팔리다. 처음에는 수능의 감회를 새롭게 해주지 않을까...하는 교과서적인 기대를 가지고 내려갔지만, 그냥 쪽팔리기만 하다. 반쯤 뛰어서 빠져나왔다. 아는 후배도 별로 없고 해서...
우리 반 친구들과 모두 다같이 고사장을 가 보기로 했다. 거의 뭐 소문으로만 들었던 모 고등학교. 소문은 소문일 뿐 얼마나 멀겠어~ 했지만 가면서 그게 진짜라는걸 알 수 있었다. 존나 멀었다. 가면서 길 잘못 든 게 아닌가 하면서 몇 번을 투닥거렸지만, 알고 보니 맞았더라. 막상 고사장 가도 별로 할 게 없었다. 그때의 나는 수능 전날에 뭘 확인해야 하고,,,,확인하고,,,하는 말이 나오면 그냥 음음음 하고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워들은 지식으로 화장실을 한 번 확인해 보려던 찰나, 학교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너무 먼 곳이었던 나머지 우리가 그 학교에 도착한 타이밍은 1,2학년이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교복 입은 1,2학년들의 시선과(교복이 완전 다르잖어..) 그 와중에 옆을 지나가는 빠따를 패용한 야구부들의 시선이 따가운 나머지 나와 친구들은 후퇴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마침 어떤 선생님이(혼자) 앞을 지나가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대충 학교 구조를 가르쳐 주셨다. 뭔 소린지 못 알아들었지만 여기 있어봐야 뭘 더 할 것 같지도 않아서 감사 인사를 하고 그냥 돌아왔다. 다들 '아니 이거할려고 여기까지 왔어?'라고 하면서 더 뭔가를 할 생각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와 앉으니 오늘 그래도 뭔가 정리 비슷하게 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뭐 여태 푼 오답노트 한 번 뒤적이며 보고 나서는 오르비를 뒤적거려 봤다. 맹세코, 고 3 생활 동안에 오르비 별로 안 했다. 전날에 정리할 뭔가 없나 하다 들어온 것 뿐.
마침 오르비에는 기대 선생님과 파급 선생님이 EBS 가형 수학 문제를 선별해 뽑아 놓은 정리본이 올라와 있었다. 딱히 뭘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냥 할 분량이 애매하니 이거 풀고 마무리하자, 하면서 프린트 하지 않고 그냥 컴퓨터 앞에 연습장을 갖다 놓고 다 풀었다. 두 선생님 보시면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코멘트도 심심해서 정독했다. (수학 모의고사 문제 만드는 게 그렇게 재밌다면서요? 그냥 그렇다구요. 히히)
그걸 다 풀고 슬슬 오르비를 끄려는 데, 마침 또 국어 예열용 지문들이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사실 본문에 서술해 두지는 않았지만 ETOOS의 수능 직전에 찍는 강사님들의 수능 꿀팁 영상들에서 수능 1교시 국어 예열의 필요성을 느꼈던 나는 그걸 뽑아서 파일에 쏙 넣어 수능장에 챙겨갈 생각을 했다. 수능장 준비물도 생각보다 많다. 수험표, 컴싸, 화이트, 수능시계, 예비 연필(사실 이거 까먹었음), 수능 도시락 등등,,, 다 챙기고 나서는 물리 모의고사도 하나 풀고(아껴 놨던 Wabu 모고였다 추천해) 오지훈의 파이널 퀴즈 책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걸로 마지막 개념 점검 한다 생각하며 쭉 흝어봤다. 사실 매일같이 모의고사를 엄청나게 풀어제끼던 차라 슬슬 나도 지쳐 있었다. 모의고사를 풀면서 처음엔 이게 수능이라면 어떨까?? 긴장되는걸? 하면서 풀지만 나중가면 이게 그냥 수능이었으면 ㅅㅂ. 하면서 풀기 마련인 듯 하다.
잠자리에 누워선 내일의 수능을 상상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짓도 많이 상상해봤다. 내일이 수능이면 ㅈㄴ 쫄리겠지? 잠도 안오겠지? 네x버 웹툰 x학일기 보니까 수능 전날에 잠도 잘 안 온다던데 나도 그러면 어떡하지? 청심환은 오바겠지? 하며 별 상상을 다 했다. 하지만 실제론 아 내일이 수능이다. 잠 안 오면 어떡한담. 쿨쿨. 하고 딥슬립했다. 내가 좀 신경이 굵은 편이어서 그런가? 여튼 그랬다.
2.수능날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도시락을 만들고 계셨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메뉴들이었다. 사실 엄마가 고기음식을 넣으면서 기름때매 속 안 좋아지는 것 아니냐 하셨지만 별 생각 없었다. 실제로도 아무 일도 없었다. 아마 수능장에서 속이 뒤집어지는 것은 정말 건강상의 이유 아니면 긴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수능장으로 떠나는 새벽의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아빠의 차에 타서 수능장으로 출발했다. 엄마는 준비 잘 했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봤고, 아빠는 별 말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가만히 창 밖을 내다봤다. 11월의 나무들은 이미 이파리들을 떨궈 앙상해 있었고, 몇 안 남은 낙엽들만이 아직 떨어지지 못해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 하나하나, 길가의 정류장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며 이 풍경들을 덧칠한 오늘은 어떤 기억으로 내게 남게 될지 상상했다.
이윽고 수능장 앞에서, 아빠와 엄마는 내게 응원의 말들을 해줬고, 나는 그저 알았다는 말 만을 했다. 긴장한 건 아닌지 걱정하셨겠지만, 이상하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모의고사와 상상 덕분인지, 아니면 오늘의 수능이 어떤 것인지 아직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 오히려 긴장보다는 살짝 들뜬 마음으로 수험장에 들어섰다. 오지에 박힌 곳이라 그런가, 수능장 앞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먹을 걸 나눠준다는데, 그걸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기억이 난다.
앞서 서술한 대로, 우리 수능장에는 우리 학교 친구들이 아주 많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내가 있는 수험장 교실 안에만 내 친구들이 4명 정도 있었다.
모두들, 일부는 긴장된 얼굴로, 일부는 살짝 흥분된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자리에 앉아 국어 예열 지문을 풀어냈다. 시벌탱 하나 틀렸다 젠장.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멘탈은 끄떡없었다. 오랜 준비의 덕분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예열 지문은 오로지 나를 잘 예열시키는 역할 만을 수행했다. 그리고 하나 하나 점검하기 시작했다. 수험표, 화이트, 수능 시계(시곗줄을 떼어 놨다), 물 등등의 것을. 그 순간, 신호가 왔다. 큰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와 가방을 교실 밖으로 빼 놓으라고 한 뒤였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재빨리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다. 칸이 몇 없는 화장실이던 기억이 난다. 온 몸의 힘을 집중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직 이르다는 대답 뿐, 아직도 왕건이는 나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 상태로 종이 울렸다. 뭔 종인지 모르지만 좀 다급해지다가 혼자 웃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왕건이는 내게 응답했다.
성공적인 쾌변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자, 다행히도 예비령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감독관 선생님이 컴싸를 나눠주시고 문제를 확인하게 하셨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본능적으로 풀었다. 내가 푼 국어 모의고사의 개수가 대체 몇 개인가? 수능 전 50일 동안 하루도 국어 모의고사를 풀지 않은 날이 없었다. 두개를 풀면 풀었지, 안 푼 날은 없었던 것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평범해서, 국어 모의고사를 풀었다. 그냥 손에 익은 대로 쭉 지나갔다. 헷갈리는 것은 별표를 치고 넘어갔다.
내가 헷갈린 곳은 문법(14번)과 화작(9번) 이었다. 화작을 어렵게 내는 기조를 알고 대비했음에도 약간 부족했나, 9번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14번은 잘 풀어냈다. 9번을 아직도 헷갈리게 남겨둔 채로, 뒤쪽의 비문학과 문학을 검토했다. 무난하게 실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시간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끝까지 고민하던 9번을 종이 침과 동시에 하나로 마킹해서 냈고, 끝까지 긴가민가 하던 차라 계속 마음이 바뀌었다. 후회하다가, 맞겠지 하다가.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절대 답 맞춰보지 말라고 하시던 담임 선생님. 아아 죄송합니다. 제자들은 단 하나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우리 학교 친구들은 다같이 모여 멘탈 룰렛을 시작했다. 뚝배기가 터져 날아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9번에 내 답이 맞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이내 2교시가 시작되었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수학 과목에 자신이 많아 학종에 논술을 섞어 썼던 나는 6모, 9모를 각각 30분 넘게 남기고 2-3등급을 맞는 기염을 토한 터라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 한 상태였다. 신들린 듯 풀어제꼈다. 아무도 날 막지모테 하며 풀던 와중에, 준킬러 기벡 문항이 나를 막아서고 말았다. 27번으로 기억한다. 종이접기 문제였다. 뭔가 잘 푼 거 같은데 묘하게 안 나오길래 뒤로 넘겼고, 29 30을 풀었다. 다시 27번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의 검토 루틴을 기억했다. 수없이 많은 모의고사를 통해 나라는 병신이 어떤 실수를 제일 많이 하는지 파악한 나는 확통 서술형-확통 객관식-나머지 서술형-준킬러 순으로 검토를 진행했고, 곧이어 27번으로 돌아왔다. 계산이 아주 더러웠지만, 도형을 생각하니 잘 풀렸다. 내 풀이가 정석인지는 모르겠다. 시험지 한 바닥 절반을 채워 풀었기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29, 30번의 검토를 진행하던 중 29번의 계산 실수를 발견했고, 한 10번쯤 다시 확인하며 고쳤다. 사실 시험 막바지에 가서는 맨 앞쪽의 쉬운 객관식들까지 검토하고 검토하다가 슬슬 그냥 손을 놔 버리려 했다.
그렇게 2교시가 끝났다. 점심을 먹으며 다시 한 번 모인 친구들은 뚝배기 대잔치를 벌였다. 나머지에는 가급적이면 크게 반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헷갈렸던 29번의 고치기 이전 답을 그대로 써낸 내 친구의 뚝배기는 고스란히 깨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심 미안하다. 사방에는 멘탈룰렛의 패자들이 공허한 눈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밥이 아주 맛있었다. 하지만 내 주위의 몇몇 친구들은 긴장한 나머지 밥을 제대로 못 먹기도 했다.
그리고 3교시, 영어는 절대 평가였기 때문에 비교적 긴장을 덜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윽스윽 풀었다. 모르는 문법은 아 이거 틀려도 1등급임 ㅋ 하면서 그냥 대충 찍고 넘어갔다. 시간이 의외로 별로 남지 않았다. 검토를 하기엔 너무 지쳐 있었고,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학원에서 잔혹하게 굴렀던 터라 영어 1등급은 제법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내가 위에서 기술하지 않았지만 내 교실에는 다리 떨기 빌런이 있었다. 그 샊귀의 신발끈 끄트머리 마감 부분은 단단했고, 그샊귀가 다리를 떨 때마다 ㅈ 같은 비트로 신발과, 책상과 부딪혀 날 미치게 만들었다. 영어듣기 때는 솔직히 물통을 던질 뻔 했다. 아아, 10새끼. 영어의 남는 시간 동안엔 유독 크게 들려왔다.
그다음 한국사와 물리, 지구과학 2는 호로록 지나갔다. 사실 이쯤되면 다들 수능 끝난 것 처럼 군다. 나도 매우 그러했다. 한국사는 어릴적 읽었던 위인전기를 떠올리며 성실히 풀고 취침했으며, 물리는 앞부분이 아주 쉽다가 뒷 부분이 난이도가 높은 정직한 형태로 나와 안정적으로 풀 수 있었다.
지구과학 2 시간 전, 시험지 꺼내는 시간에 그 감정이 극대화되었다. 교실 안 모두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모두는 눈으로 시발 가고싶다 를 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반쯤 들뜬 채로 문제를 풀어갔다. 역시 지 2, 가성비 ㅆㅎㅌㅊ 과목답게 별 이상한 신유형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오지훈-시대 단과 불가마로 잘 구워진 나는 신유형에도 막힘없이 풀어나갔다. 이보다 더한 것을 많이 겪어봤으므로... 그렇게 20문제 전체를 풀고 19문제를 검토하고 나니, 이것이 내 수능 마지막 검토라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시험시간 1분 정도 남았을 때 속으로 아니 20문제중에 마지막으로 하는 1문제가 실수했겠는가...하며 봤다. 그리고 문제의 그림 위에 써놓은 기호를 보고 심장이 싸늘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존나 걱정했다. 왜냐하면 아예 어이없게 반대로 해놨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거 있잖은가. 대소관계 완전히 반대로 하고 그런거. 속으로 아니시발 아니시발 아니시발 하면서 다시 확인해 봤지만 진짜였고, 답안지에 불현듯 화이트를 그었다. 그 순간 종이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냥 여집합을 찍어서 냈다.(ex:ㄱㄴ 선택했는데 ㄷ으로 찍어서 냄) 그리고 다음 순간에 종이 끝났고, 속으로 시발시발과 끝났다를 외치며 마지막 문제를 다시 봤다. 이미 컴싸는 내려놓은 상태였다. 아아, ㄱ은 어느 상황에서건 무조건 맞는 명제였다. 젠장. 속으로 이제는 시발시발만 외치며 주위를 슥 보니, 아직도 마킹하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후회가 되었다. 나도 이거 저랬으면 맞았는데...하는 생각이었다. 휴, 시벌. 심지어 3점짜리였다.
수능이 끝났지만 퇴실은 바로 못 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아는가. 그 교실의 기묘한 분위기는 마치...치약맛 초콜릿과도 같았다. 이질적이면서도 기묘하게 화합된 느낌. 수능 끝난 고 3의 뛰쳐나갈 듯한 느낌들과, 수능 본 수험생 다운 후회와 흥분이 뒤섞인 분위기였다. 선생님이 웃으며 수고했다고 몇 마디를 건넸고, 대부분 그 말에 답하진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잠시 후 핸드폰이 전달되었다. 개쓰레기 핸드폰이었지만 데이터가 되는 관계로 나는 답안부터 찾아봤다. 시험 볼 땐 담담하게 풀었지만 오히려 채점할 때 꽤나 긴장했다. 국어를 맨 처음 채점했고, 가채점표 상으로 2점짜리 2개를 틀렸다. 둘 다 영 이상한데서 틀렸다.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이었기 때문에 둘 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수학을 채점했다. 그 기분을 아는가? 5번인지 7번인지, 앞에서부터 비가 내리는 기분. 또다시 실수인가? 결국 못 고친 건가? 하는 생각이 수없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답안을 자세히 보니 짝수형이었다. (시바롬들이)짝수형을 위에다 두는게 어디 있단 말인가. 당연히 위가 홀수형인줄 알았지! 멘탈이 흔들흔들하던 나는 속으로 십년감수를 오백번 쯤 외치고 홀수형으로 다시 채점했다.
...백점이었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소리를 내자 내 앞의 모르는 사람이 웬 병신인가 하는 눈으로 돌아봤지만, 나는 가채점표를 보기 바빴다. 순간 모두가 아는, 그 단어를 내뱉었다. 돌아보던 앞 사람은 이제 익숙하다는 눈초리로 바뀌어 다시 앞을 봤다. 그리고 내 앞앞에 앉아있던 내 친구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나대는 듯 싶었지만 그때는 그 필터링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은 이번엔 다른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 하나와 떠들며 교문을 나왔다. 몇몇 친구들은 멘탈이 나간 듯 했다. 수능 전날 담임선생님과 친구와 함께 했던 약속이 있었다. 수능 끝나고 공중제비는 무리고 대신 수능장 앞에서 구른 다음에 동영상 찍어서 보내드리기로. 돌바닥은 아플 것 같아서 오는 길에 봤던 바로 그 낙엽 위에서 한바퀴 데구르르 굴렀다. 나는 부모님께 버스를 타고 집에 오겠다고 해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데,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내 구르기를 봤겠지만 나는 마치 한타 때 가렌 궁을 은신으로 닷지하는 베인처럼, 망설임 없이 굴렀다. 지금 생각하면 종나 뻘쭘하다. 사람이 너무 많자 그냥 그 전 정류장을 향해서 위쪽으로 쭉 올라가 걸었다. 종나 멀었고, 그 사이에 내 친구도 한 번 굴렀다. 그리고 어디선지 모르게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구르는 와중이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버스에 타 친구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 점수를 알려드렸다. 치킨을 먹고 온다고 말하고, 버스에서 내려 치킨을 먹으며 한번 더 전화를 걸었다. 욕을 존나게 먹었다. 집에 들어와 채점을 안 했기 때문인 듯 하다. 과탐 답안이 안 나온 시점이었고, 여러가지로 억울했다.
집에 들어가 여러 음파로 고막의 강도를 실험한 이후, 답안을 채점했다. 역시나, 지 2의 그 문제를 틀렸다. 국어 2점 2개, 지 2 3점 1개를 틀렸다. 원래 사람 욕심이 끝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걸 보니 또 아 저 지투... 아 국어 실수지 저거...하면서 궁상을 떨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말하면 난 그 즉시 참살될 가능성이 컸다. 시험장에서야 그렇다고 쳐도. 나중에 보니 실수했다고 생각한 국어 한 문제는 가채점표를 잘못 적은 것인지 성적표를 보니 맞는 것으로 나왔다.
3.수능 후
사실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 나는 원래 서울대 물리학과를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 가라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그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말씀하는 것에 설득되기 보다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어느 순간 부모님의 모습처럼 바뀌어 갈 테고,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옅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 미래의 모습이 부모님이라면, 먼 훗날 내가 후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게 현재의 나는 아니었다. 길고 긴 갈등의 시간들이었다. 부모님도 결국엔 지쳐 떨어졌고, 그냥 내 스스로 선택했다. 사실 지금도 이 선택이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축하해 주셨고, 나를 아주 많이 도와주신 고 3 담임선생님과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컨설팅을 해보기도 하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최종적으론 결국 부모님의 말에 따라서 가게 된 듯 싶다. 그 밑엔 이런 심리가 깔려 있었다. 영 아니면 다시 반수해야지 하는. 최종 결정을 내릴 때도 이것만은 못박아 두었다. 사실 이것도 나중에 꺾을지도 모른다. 수능 전에도, 수시는 공대 의대를 넣었지만 내가 서울대 물리학과 정시로 갈 점수가 나오면 보내준다고 부모님께 못 박아 놓았고 한 번 해보기나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수능이 끝나고 나니 결국 의대에 간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한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 앞에 놓인 산은 그보다 큰 것이 많았다. 많은 문제들이 내 앞에 놓여져 있었다. 당장 압박이 가해지진 않지만 언젠가 해결해야 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것들. 아마 모두가 일생동안 풀어가는 고민이 아닐까 한다.
여기까지 다 읽은 분이 있을랑가 모르겠지만...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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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물 ㄷㄷ
사실 결국 의대감 내가 위에다 안써놨구나
설물
사실 결국의대갔어용
오잉ㅋㄱㅋㄱㄱㄱㄱ 이게 뭐야
허허헣
설의? 카의?
이 시기쯤엔 모고 몇점대 나오셨나요,, 그리고 인강들은거 뭐뭐있으셨어요? 확률도..
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