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o Ergo Sum [1105120]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2-06-18 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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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가 고민인 학생이 봤으면 하는 글 - 좌절과 성공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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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시험이 한 과목밖에 남지 않아서 매우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무거운 공부 이야기를 연달아 썼기 때문에, 한 번쯤 쉬어가는 느낌으로 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다시 돌아온 수기 같은 칼럼, 칼럼 같은 수기 시간입니다.


 6월 모의고사 끝난 후 슬럼프에 빠진 학생도 있을 거고, 이제 곧 슬럼프가 '찾아올' 학생도 있겠죠. 제 글을 줄곧 읽으셨다면 이게 악담이 아님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슬럼프와 싸워 이기는 게 아니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라 했습니다. 한마디로 흘려보내는 거죠. 하지만 그 슬럼프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위로를 해주셔도, 머리에 남는 생각은 "아 공부해야 하는 거 아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어."일 거에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아닌 친구나, 아는 선배가 이야기하면 조금은 실감이 날 거 같아, 감히 제가 그 위치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절대로 일침이 아니고, 그냥 제가 겪었던 두 가지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는 좌절도 해봤고 나름 성공도 해봤으니까요.



좌절의 시간


 저는 굉장히 오랜 기간 방황했던 학생입니다. 현역 수기에 나와 있었나요? 꽤나 공부를 잘했던 중학교 때도 그 속은 이미 썩어들어가는 중이었고, 중2부터 고2 말까지 그야말로 중2병에 걸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한 게 고3 직전 겨울 방학입니다. 그렇지만 저희 아버지는 제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고, 저는 그 도움으로 거의 한 편의 드라마를 쓰게 되죠.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계와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 거의 전문 컨설팅 수준으로 수능까지의 방향성을 설계하신 게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게 놀라우리만치 급격하게 성적이 올랐던 저는, 7~8등급 시절부터 꿈꾸던 서울대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었고 반드시 서울대에 가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죠. 하지만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수능을 치고 나니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아, 교과서 좀 볼 걸, 수특으로만 하지 말고 기본서부터 공부할 걸." 등 수능을 한 번 치고 나서야 깨닫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좌절했으니까요. 누구보다 서울대를 원했던 저는, 인서울 상위 10개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도 못 받았습니다. 당연히 목표는 뚜렷했으니 (가)군의 서울대 경영학과에만 지원하고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왜 제가 재수 때 4개월 만에 고려대를 가게 된 건지 아시나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 극적으로, 4개월 공부해서 고려대 쟁취하자! 라고 외치는, 그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역 때의 좌절 이후 그 엄청난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으니까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세상에 나 혼자만 버려진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럴 자신도 없었고, 겁쟁이였기 때문에 죽는 걸 두려워했지만 왜 학생들이 '고작' 입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있어 입시는, '고작' 따위로는 수식할 수 없는 단어였을 겁니다.


 졸업식을 하는데, 일반고이다 보니 당연히 특유의 북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후회하는 일이죠. 졸업식을 뒤로 하고 칼같이 집에 온 저는 또 침대에 누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위로를 받아도, 전혀 소용이 없었고 불효막심하게도 부모님께 역으로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친구가 조금만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면 웃어넘기지 못했습니다. 밖에 나가기도 싫었고, 아니 그냥 살아 있는 게 싫었습니다. 죽을 용기도 없는 게, 그렇다고 열심히 살 용기도 없는 게 도대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굉장히 오랜 기간 방황할 때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물론 거짓말하고 PC방 간 거 들켰을 때 삭발당했던 기억은 있네요. (ㅋㅋ) 어쨌거나 정말 큰 잘못이 아니면 터치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지나고 나서 들은 이야기는, 어머니는 속 터져서 화내시는데 아버지는 "놔둬라. 돌아온다."를 반복했다는 거.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 속에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쁨


 재수였던 2020년(21학년도 수능 대비)에 이사가 결정되었는데, 이사 날짜가 되기 한 달 전에 그 사실을 알았죠. 그때부터 한 2주 뒤쯤에 아버지가 그 해 처음으로 공부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무슨 일을 해도 인생 전체에서 늦은 건 없다. 그런데 서울대를 목표로 할 거라면 지금 시작해야 한다. 사실 올해 대학을 갈 거라면 지금도 늦었고, 죽기살기로 해야 가능할 거다."


 사실 저는 저 말을 듣고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그럴 거라는 걸 아버지도 알고 계셨을 겁니다. 대학에 가고, 한참 지나고 나서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사 가기 전까지 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고민을 했겠죠. 이사 이후 뒷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4개월 압축공부법 칼럼에 나온 것과 같습니다.


 재수하는 동안에 공부에 집중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좀 쉬어가면서 하라는 말도 들어봤고, 매일 밤마다 그렇게 뿌듯하게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막바지에 가서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결국 수능 때 4개 틀리고 고려대에 붙었죠.



 진짜는 여기부터입니다. 그해 수능에서 원점수 288점을 받았던 저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컴퓨터를 사려고 부품을 알아보는데, 판매자에게 전화할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언제나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유독 통화만 하면 말을 잘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뭐.. 이때도 당연히 자신이 없었겠죠. 속으로 떠올린 생각은? "아니 내가 수능 288점인데 뭐 어쩔 건데"였습니다. 거짓말 같나요?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우 합당한 사고입니다. 없던 자신감도 생기고, 전화는 물론이거니와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죠.



 예전에 어떤 성대 분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 걸 봤었는데, 저는 씻을 때조차 고려대생이라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고, 집에서 저를 부르는 호칭은 '고려대생'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제 목표는 서울대였으니까요.) 


 심지어는 외갓집에 갔을 때, 그 연로하신 외할아버지조차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는지 몇십 년 전에 가보셨을 안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내셨습니다. 여기서 뭐 타고 가서 뭘 갈아타면 어떻게 되고..부터 시작해서 정말 평소라면 왜 이러시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제가 지금 쓰는 이야기들에는 과장이 없다는 걸, 성공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런 날도 있었습니다. ATM에서 돈을 뽑고 있었는데,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야 봤냐? 나 고대 과잠 처음 봐."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뒤돌아봤을 때는 그 학생들도 자기 갈 길을 가느라 시선이 안 마주쳤지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죠. (아마 고3 학생들이었을 거 같네요.)


 올해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형이 담배 심부름시켜서 편의점에 갔을 때 학생증을 보여주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내밀 때는 신분증이 없으니 이거라도 내밀자는 생각이었지만, 알바생은 적잖게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이건 좀 특이한 게 너무 오랫동안 학생증을 안 돌려줬습니다. 주변에서 스카이생을 처음 봤을지도 모르죠.) 속으로 들었던 생각은, "성공하니까 참 별 일도 다 생기네."였습니다. 어이 없는데 기분 좋은 느낌을 아시나요. 딱 그랬었습니다. 이외에도 에피소드가 많지만 이 정도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듭 강조드리지만 저는 어느 정도만 성공한, 그러니까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 원래 목표였던 서울대는 여전히 좌절의 기억으로 남아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대학에 간 이후 겪었던 일들은 어떤 의미로든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별 거 아닌 일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시간이었죠.



하고 싶은 말


 제가 이런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들려드리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 좌절할까 두려워서라도, 또 성공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서라도 슬럼프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슬럼프는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만, 지나가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합니다. 


 간혹 좋은 대학에 가야지만 성공의 기쁨을 누린다는 식의 학벌주의로 이야기가 흐르는 경우도 있을 거 같은데, 여러분이 좌절하고 또 자존감을 잃었던 이유는 대학 수준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본인이 마음에 품고 있던 목표에 안타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고려대만 가도 여한이 없다고 할 학생이 널렸을 테고, 또 반대로 고려대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할 학생도 많을 겁니다. 특히 입시 사이트에서는 그런 경향이 강하죠. 이 말은 결국 본인이 무언가를 도전함에 있어 성공했냐 그렇지 못했냐가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슬럼프가 올 때 한 번이라도 제 글을 떠올리고, 또 여유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슬럼프가 왔다고 포기하면, 끝없는 좌절 속에 빠졌던 저처럼,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국 패배하게 될 겁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을 견딜 수 있다면 제가 맛보았던 성공의 기쁨을 똑같이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성공은, 단지 입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껏 이뤄낸 것들이 비록 큰 틀에서는 입시에 속하지만, 그렇게 처절한 노력으로 성공해봤으니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식(?)으로 뭐든 도전해볼 수 있었던 겁니다. 과외도, 컨설팅도, 칼럼도, 모의고사 출제도, 강연, 라이브 / 유튜브 강의도 전부 그랬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해본 적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또한 가지게 되겠죠. 성공했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제가 비록 아직은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엄청난 도움을 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아픈 느낌이네요. 좌절의 시간을 꺼내보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어쩌면 저와 비슷한 일을 겪었을, 그리고 겪고 있을 학생들에게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만큼 상처가 되는 표현이 없을 거 같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정말로 맞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은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전까지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니까요.


공부를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마치며


 최근 들어 팔로워 수를 확인한 적이 없는데 벌써 2000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이렇게 길고 무거운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 글은 끝까지 읽는 데도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다음 글은 아마도? 문제를 지배하면서 푼다는 것의 의미 - '정답 특정'의 원리, 파급 국어 후기 / 리뷰 정도가 있겠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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