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ld [409404] · MS 2017 · 쪽지

2015-07-25 04:42:05
조회수 3,880

리얼공감 수능후기 (재수이상 손수건 준비)

게시글 주소: https://9.orbi.kr/0006284995

 아침이 밝았다. 꿈 따위는 없었다.  11월 13일 오늘, 오늘의 내가 전날의 나와 다른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한 존재론적 사유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평소와는 똑같은 일상.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지만 하나하나가 어딘가모르게 어색했다. 

 아침공기는 쌀쌀하다. 오늘같은 날 아침 일찍 가방을 메고 어딘가로 향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혹시 저들도...?' 지하철을 타고 배정된 학교를 가는길. 학교에 가까워 질 수록 가방을 멘 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정문 근처에서 고등학교 후배들이 선배들 응원한다고 막 북치고 장구치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수능시계니 컴퓨터용 싸인펜이니 그런 것들을 파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당시엔 시끄러웠다. 당시 내 뒤틀리고 부정적인 눈에는 그들이 어떻게 보였나면 '저들은 무슨 수능을 연례축제 쯤으로 아는건가?'였다. 정문 앞. 고등학교 선생님이 현역들 응원하러 이 학교에 왔나본데우연히 나와 마주쳤다. 부끄러웠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밝게 인사를 하고 교실에 들어섰다. 교실의 더운 공기가 낯설다. 너무나도 낯설다. 낯설고 무섭다. .들어가고 싶지 않다. 간신히 발을 옮겨 자리에 앉았다. '나이스...창가쪽..' 나는 재수생인데 2년 연속 창가쪽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창가쪽은 창가 옆자리에 물건을 놓아도 되고, 사람으로 둘러쌓인 기분이 줄어들기에 언제나 좋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들 표정이 굳어있어서 마음이 안좋다. 나조차도 굳어있어야 될것같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감독관이 들어오고 주의사항을 말해주는데, 이때가 오히려 시험보다 더 긴장됬던것 같다. '혹시라도 내가 실수로 나도 모르게 부정행위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부정행위 조항이 있지는 않을까?'.. 깐깐한 감독관을 대비해서 얌전히 개인샤프를 가방에 집어넣고 나눠준 수능 샤프를 사용하게 된다. 새 샤프를 잡는 그립이 영 어색하다.
 이윽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막상 시험지를 받으면 긴장조차 안된다. 정말이다. 나도 긴장조차 안되는 내 모습에 내심 놀랐다. 오히려 긴장을 걱정하는 것에 대한 긴장이 몇 갑절은 더 되었던 것 같다. 막상 시험이 시작되면 거대한 정적 속에 시험지 넘어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뿐이다. 미로 속에 들어가본 적이 있을까? 난 그런 경험은 없는것 같지만 아마도 지금 그 기분을 표현하는데는 그것만한 좋은 비유도 없을 것이다. 나 홀로 미로 속에 들어가 정해진 시간안에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이 내 임무였다.
 손을 덜덜덜 떨면서 마킹을 마무리 지으니, 1교시 국어가 끝났다. 망할놈의 맞춤법 문제와 신채호 문제, 그리고 풀지 못한 슈퍼문이 자꾸 마음속에 걸렸다. 이 시험이 나한테만 어려웠는지 다른 사람에게도 어려웠는지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 두려웠다. 흡사 보이지 않는 적에게 쉐도우 복싱을 날리는 기분이라고 해야되나? 화장실에 가니 다들 1컷 얘기로 웅성웅성 거린다. 고딩들은 말했다. "이번 국어는 9월보다 조금은 어려운것같기도 한데..? 1컷 95점 정도 나오지 않을까?" (참고로 작년 국b 1컷은 91점이다.) 95점이란 소리에 내심 놀라며, 몇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나에게 자책을 한다. 
 이윽고 수학과 영어, 사탐 역시도 마찬가지로 시험을 쳤다. 상대적으로 1교시버프+ 난이도 버프 로 인하여 긴장됬던 국어와는 달리, 나머지 과목들은 평소 모의고사 보듯이 보게된다. 그때 그 순간 나에게 논리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기계적으로 원래 풀듯이 딱딱 단계에 맞춰 푸는 것에 불과한 것 같다. 혹시 영어듣기 시간에 졸까봐, 미리 싸온 유뷰초밥을 조금만 먹고 남겨놓는 센스도 발휘한다. 그때 쯤 되면은, 옆 교실로 고등학교 때 친구를 찾아가서 만나보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어찌됬건 시험을 다치고 나왔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같이 가는 친구와 함께 입에서 나오는대로 우선 아무말이나 막 뱉어댔다. 도저히 생각을 하고 발화를 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차마 못봤다고 징징거리지는 못하겠더라. 옆에 있는 친구가 나보다 더 망쳤을 수도 있으니깐...수능이 끝나면 동료 수험생들끼리는 서로 조용해지는게 암묵적 예의로 정착된 것 같다. '솔직히 오늘 같은 날 사치 좀 부려봐야지.. 집갈때는 지긋지긋한 지하철 말고 택시타고 가야겠다' 그렇게 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필자는 삼(반)수를 하게된다



새벽감성에 젖어서 뜬금없지만 수능후기 올립니다 ㅜㅜㅜ 작년 수능 바탕으로 적었습니다 ㅋㅋㅋ솔직히 수능 당일날은 머리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지 모르지만 몸은 아직까지 그때의 느낌이나 의식의 흐름을 기억하고있는 것 같습니다ㅠㅠ 졸린 상태에서 써서 맞춤법 정확하지 못한점 양해바랍니다 ㅜㅜ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