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번외편 - 비전투병과(분량조절실패!)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3840910
보통 전쟁이라고 하면 서로 간에 포격을 주고받고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물리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 편의 전쟁사나 직업 칼럼을 통해, 이런 주류이미지 외의 비주류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단순히 전투병과들을 무식하게 몸만 쓰는 사람들이라고 절대 비하하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장기와 특성을 이용해서 군대에 기여할 뿐이지, 주류나 비주류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비주류는 단순히 비율차이로 쉽게 구분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소방관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나요? 거대한 화마에 맞서는 소방관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소방관의 업무 중 직접 화재를 진압하는 것은 전체에서 적은 비율입니다.
그러나 업무횟수가 적다고 해서 불필요한게 아니죠, 화재는 매우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소방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러한 문제를 최대한 빠르게 해치워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매년 소방관 순직 사례가 발생하는데,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순직은 이런 극단적인 화재진압 발생 중에서 발생합니다. 전체 업무 중에서는 발생 비중이 낮으나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위험한 업무 중에서 순직하는 소방관이 발생하며, 이들의 희생은 주변 동료들에게 강한 PTSD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8/03/206435/)
실제로 경찰관이 직접 물리적으로 출동해서 용의자를 검거하거나 중재하는 행위는 전체 업무의 30%라고 합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다른 행정적인 일이나 상담, 용의자 감시 등을 하겠죠.
그러나 경찰관의 이미지는 범인을 쫓아가서 제압하는 장면이 쉽게 떠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 일을 잘 해야지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제대로 범인을 쫓아가지 못하거나,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경찰 또한 소방관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해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이런 업무에서 발생합니다.
스타크래프트 여러분 아마 다들 아실 것입니다. 테란 유닛에는 마린(해병)만 있습니까?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유닛만 존재합니까? 아닙니다. 사이언스 배슬은 갖가지 과학전을 통해서 아군을 보호하거나 적군을 저지합니다.
메딕은 여러 유닛을 치료하여 다시 싸울 수 있게 도와줍니다. SCV는 기초 공병으로서 건물을 짓고 자원을 채취하는 테란의 버팀목입니다. 굳이 직접 싸우지 않아도 충분히 군대라는 집단에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테란의 SCV는 재료공학, 기계공학, 건축공학을 전부 마스터한 든든한 일꾼이자 버팀목입니다. 유사시에는 저렇게 직접 싸울 수도 있죠)
오히려 저는 이렇게 직접 뭔가 부딪히는, 누구나 당연히 떠올리는 주류 이미지 외에 알게 모르게 기여하는 직종이나 사람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합니다.
로마가 한때 지중해와 유럽을 재패한 제국이었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때 로마군은 특히 뭐가 특출 났길레 그렇게 동네에서 깡패노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활을 잘 쏴서? 군인이 많아서? 기병이 많아서? 갑옷이 튼튼해서? 무기를 가공하는 제련 기술이 발달해서? 방패가 튼튼해서?
물론 제가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에서, 대단히 복합적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군대는 잘 싸우면 강군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정복자가 되기 힘듭니다. 아무리 잘싸워도 혼자서는 언젠가는 힘이 빠지기 때문이죠(역시 다구리 앞에 장사가 없다)
로마군이 그때 온 나라는 뚜들겨 패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군이 잘 싸우고 전략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작전을 잘 짰다기 보다는, 요약하자면
‘도로를 잘 깔아서 이겻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뜬끔없이 들리겠지만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로마군은 잘 싸워서 승리했다기 보다는, 도로를 잘 깔아서 승리했다는 말이 좀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로마군이 도로를 엄청나게 잘 깔았습니다. 도로를 잘 깔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보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쉬워집니다.
로마군이 도로를 매우 잘 닦아놓으니 그곳을 통해 보급품이 쉽게 조달되었고, 로마군은 먼거리 원정에서도 보급이 끊기지 않고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먼거리를 원정해서 침공을 가하는 군대는 보급선이 매우 길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집니다. 반대로 방어하는 입장은 보통 자기 집 앞마당에서 전쟁을 하기 때문에 보급조달에 유리합니다. 문제는 로마군은 먼거리에 와서도 전혀 지치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마군과 오래 대치하고 싸울수록 거꾸로 방어자는 보급문제에 시달렸고, 로마군은 든든하게 챙겨먹을꺼 다 챙겨먹으며 우수한 무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군은 ‘창과 방패가 아닌, 삽과 곡괭이로 이겼다’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군은 비전투 분야에서 뛰어난 요소가 많았습니다. 야전병원과 군의관 제도가 매우 선진적이어서, 비전투로 인한 병력손실(전염병, 부상자의 감염, 사고로 인한 상해)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뛰어난 대응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화살촉을 뽑는 군의관의 모습. 당시 시대에서는 사소한 상처로도 파상풍과 세균감염으로 목숨이 달아나는게 일상이었지만, 로마군은 매우 뛰어난 의학기술로 이를 해결한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면, 직접 나가서 싸우는 사람보다 뒤에서 받쳐주고 보급을 조달하는 인원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사의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에서 보면 100만 대군으로 침략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전투병과 보급병을 모두 포함한 숫자입니다. 오히려 이 인원 중에서 절반 이상이 보급병일 정도로 보급은 매우 핵심적이며 어려운 일입니다.
현대에서도 보급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이게 잘되냐 안되냐로 승패가 갈리는 사례가 무척 많았습니다.
미국의 시빌워, 남북전쟁에서도 사실 싸움 자체는 남군이 더 잘 했습니다. 로버트 리같은 뛰어나다고 명성이 자자한 장군도 남군이었으며, 실제 종전 후 전사자도 북군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남군이 패배합니다. 왜? 북부는 남부에 비해 압도적인 공업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군대에 보급을 끊임없이 수송했기 때문입니다.
남부는 북부에 비해 보급상황이 대단히 열악하여, 심지어 자국 수도(리치먼드) 근처에서 북부군과 싸울때도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싸워야 했습니다. 반면 북부군은 전신선과 철도 수송을 통해 탄약, 군수물자, 식량을 지속적으로 보급받으며 끈질기게 싸웁니다. 잘 싸웠지만 결국 보급에 지친 남부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게 됩니다.
(전략적으로는 뛰어났으나 산업적, 공업적 역량이 부족한 남부가 몰락한 남북전쟁은 현대전의 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의 전쟁은 결국 보급역량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보급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외에도 군대에는 다양한 직군이 존재하며 이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에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고위도에 자리잡아 겨울과 눈이 흔한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직전 소련과의 전쟁에서 스키와 썰매를 활용해서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눈이 쌓이면 걸어다니기는 매우 힘들어지나, 스키나 썰매를 활용하면 보급과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핀란드의 스키부대는 게릴라 작전으로 열세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의 혼을 빼줍니다. 현재 러시아에서도 스키나 썰매를 활용하는 특수부대가 있습니다.
미군 특수부대에서 특수작전 기상팀(SOWT)은 아주 독특한 부대입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기보다는, 다양한 관측장비를 가지고 적군의 지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합니다. 현대에서는 헬기와 비행기 등 첨단장비를 활용함에 있어서 풍향과 풍속, 기상 정보는 대단히 민감한 부분입니다.
(기상관측 장비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미 특수부대. 해당 지역에 안전히 착륙하고 수송기나 비행기를 띠울 수 있는지 판단을 하기 위한 필수 정보를 알아낸다)
미군의 강함은 압도적인 보급, 수송 능력과 강력한 화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세계 항공모함의 절반은 미국의 것이며, 이 외에도 해상, 공중 전력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통해 아군을 지원하고 적군을 무력화합니다.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군에 대한 오폭위험을 줄이고 상대방의 위치와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여 지원을 요청해야합니다. 이것을 위해 존재하는 특수부대가 있습니다. 미 해병대의 항공함포 연락중대(ANGLICO)는 무전기로 적군 위치에 아군의 화력 투사를 요청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겠지만 아군에 대한 오폭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사방에 포탄이 빗발치는 정신없는 곳에서 적군을 정확히 구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상황에서 정확히 관측하고 화력을 유도하는 이들은 이 분야만 전문적으로 훈련받습니다.
(무전을 치는 미군의 모습. 이들의 호출로 곧 인간이 개발한 가장 강력한 병기가 적군 머리 위에 떨어집니다
http://photolog.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c341&logNo=70102486624&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이번 칼럼을 통해, 싸우는 집단인 군대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조직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사 시리즈(약 11편 예정)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https://orbi.kr/00019535671 - 1편
https://orbi.kr/00019535752 - 2편
https://orbi.kr/00019535790 - 3편
https://orbi.kr/00019535821 - 4편
https://orbi.kr/00019535848 - 5편
https://orbi.kr/00022556800 - 번외편 인치와 법치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굿모닝
-
휴대폰 잠깐 빌려줫는데 스벅 아이스티랑 빈츠 주심 마침 커피 사러가려 했는데 진짜 개이둑 ㅋㅋㅋ
-
자꾸 질문을 할때 잡았는데도 포기하거나 다른 마스터들이 질문중이라고 포인트 뜯기면서...
-
https://orbi.kr/00072308003/%5B%EC%B9%BC%EB%9F%...
-
조용하다 6
적막하구나..
-
전에눌럿던하트잘못눌러서취소했다가다시 눌러서 원복해놨는데이거알림감?
-
전전보다는 밀려도 화심기보다는 위일 줄 알았는데 정말로 선호도가 밀리나
-
국어 잘하는분들 3
지문 제재별로 골고루 풀어야한다고 보시나요? 고2 독서지문 부터 좀 보다...
-
22번이 어땠고 미적 30번이 어땠고 얘기했더니 수능끝나고 그걸 오답했냐는 소리를...
-
인생몰까 1
오늘도 오전이 밝았군요 ..
-
원소기호만 앎
-
독서 난이도 어떤가요? 많이 쉬운편인가요? 아니면 그냥 평균 난이도 정도라고 보면 되나요??
-
김과외 왜 이럼 0
채팅이 안보내짐 과외 상담중이였는데 채팅 안보내녀서 대화도 끊기고 앱 삭제했다 다시...
-
타인에게 배푼 호의가 결국 저에게 화살로 되돌아 올 때가 많이 생기네요,, 무언가를...
-
과외알바를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한 매뉴얼&팁입니다. 미리 하나 장만해두세요~~...
-
표창키우기
-
안먹고 나오니까 ㅈㄴ 배고픔
-
방학이너무짧은데
-
퇴근 완료 3
피곤쓰
-
야이버러지들아 2
-
모 국어 선생님 짝퉁인가요? 어이가 없네요
-
수1 수2 미적 자이스토리 싹 샀는데 이거 다 푼 다음에 뉴런 후 수분감 이게 맞음요?
-
그것도 민증필요해서못샀는데 그새 폭등했네 억까ㅁㅊ
-
두 체계 이론과 부존자원 효과 - 수특 독서 실전편 제2회 10~13번 0
안녕하세요, 디시 수갤·빡갤 등지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국어 강사입니다. 이번엔...
-
안녕하세요 '지구과학 최단기간 고정 1등급만들기' 저자 발로탱이입니다. 지난 1년간...
-
얼버기 2
모닝
-
왜냐면 이제부터 기다림이 24시간이 넘을 때마다대가리를 존나 쎄게 쳐서 제 머릿속을...
-
강제휴학인 김에 1년동안 할거없어서 전액장학이니까 심심해서 한번 더치겟다느데...
-
미친 크랙해버렸네 한판안에 5인궁도 하고 4인궁도 하고 유체탑 포스 지리네
-
딮기있을때 우승 못시켜줘서 미안했다.. 그때 ㄹㅇ 우리도 우승할줄 알았음.....
-
역함수끼리의 교점이 y=x와의 교점만이 아니라 아래 그래프처럼 나올 수 있다는 걸...
-
KC 한국오겄네
-
ㅎㅇ 1
ㅎㅇ
-
지금 사문 통계까지 개념 돌렸는데 사문 매칭 문제는 오비탈 느낌이고 통계는...
-
오늘 자율 등원 아님? 2교시쯤 갈랬더니 뭐지
-
기상 8
으아
-
바로자리바꾸러간다 1월부터 바라고 있던 자리다
-
왜 히라가나로 완다호이 적혀있음? 원더랜드의 완다 니까 가타카나여야하는거 아님?
-
의대 사정이 하도 안좋으니까 최상위권들이 치대로 가서 그런가요?
-
약속이 생겨버린
-
학원만 다니다 겨울방학때 처음으로 인강으로 공부하고 있는 현역입니다 모고 성적은...
-
다이어트 종료 9
103일 걸림 18.5kg 감량 비만 → 저체중 끝
-
아 오늘 레전드 가슴하고 수학 하는 날인데..
-
1.화작 기하 한지 세지 하려고 하는데 화작을 언매로 바꾸는게 좋나요? 2.한의대는...
-
UNIVERSITY OF SEOUL.님의 장례식이 아닙니다??? 2
ㅅㅂ왜 살아있는건데
-
잇올러들 주목. 3
오늘 자율이라고 안가고 침대에서 밍기적밍기적 거리지 말고 정규시간처럼 공부하자 형은...
-
정병훈T의 승부수였다는데 ㅋㅋ
-
현역때 공통 하나 미적 3개 틀렸고 지금은 확통 세젤쉬 한 바퀴 돈 상태입니다....
좋아요! 다읽었어요ㅎㅎ
군의관이 화살을 뽑아준 저 병사는 무릎에 맞은 화살때문에 경비병이 됩니다